벚꽃 축제가 끝나고 여름 관광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 5월의 일본은 현지인들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이 시기에 진짜 일본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푸른 신록과 쾌적한 날씨(15-23°C), 그리고 현지인들의 일상이 만들어내는 5월 만의 매력.
일본인들이 실제로 즐겨 찾지만 여행 가이드북에는 잘 소개되지 않는, 하루 동안 방문할 수 있는 숨겨진 명소 세 곳을 소개한다.
01. 가마쿠라의 하세데라 사원과 이나무라가사키 해안길
도쿄에서 전철로 약 1시간, 가마쿠라는 일본 역사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도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가마쿠라 대불과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신사에 몰리지만, 현지인들은 조용한 하세데라 사원과 그 뒤편 해안길로 향한다.
5월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
- 관광객들이 급감해 현지인들만의 고요한 사원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음
- 신록으로 뒤덮인 언덕길과 푸른 바다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풍경
- 초여름 수국(아지사이)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로, 6월 수국 성수기 전 한적하게 감상 가능
- 비수기로 숙박비가 30% 이상 저렴하고 현지 식당에서 줄 서지 않고 식사 가능
하세데라 사원은 8세기에 건립된 역사적인 장소로, 자비의 여신 간논 대불상이 있는 곳이다. 이 사원은 가마쿠라 시가지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해 전망이 뛰어나다.
여행 포인트
- 도쿄에서 JR 요코스카선을 타고 가마쿠라역 하차, 이후 에노덴선으로 갈아타고 하세역에서 내림
- 하세역에서 하세데라 사원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
- 평일 오전 9시경 방문 시 사원이 가장 한적함
하세데라 사원 뒤편으로는 이나무라가사키 지구가 있다. 이곳은 유이가하마와 나나리가하마 사이에 위치한 공원으로, '가나가와의 경승 50선', '간토의 후지산 100선'에 선정된 명소다. 공기가 맑은 날에는 멀리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쇼난 굴지의 절경으로 유명하다.
현지인 꿀팁
"하세데라 사원에서 꼭 볼 것은 벤텐쿠츠(弁天窟) 동굴이에요. 관광객들은 보통 대불상만 보고 가지만, 이 작은 동굴 속 신사는 현지인들이 특별히 아끼는 명소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야광 관음상을 볼 수 있는데, 평일 오전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요."
"하세데라에서 식사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메인 거리를 피하세요. 하세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쇼난야(湘南屋)'라는 작은 식당이 있어요. 이곳의 '시라스동'은 현지인들만 아는 별미로, 아침에 잡은 신선한 멸치 새끼로 만듭니다. 5월엔 특히 맛있어요."
"이나무라가사키 공원에서는 정해진 산책로만 따라가지 마세요. 해안가 쪽으로 내려가는 작은 흙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작은 자갈 해변이 나와요.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조용히 낚시를 즐기거나 석양을 감상합니다."
감성 포인트
해 질 무렵, 이나무라가사키 해안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붉게 물든 하늘과 에노시마 섬의 실루엣, 그리고 멀리 보이는 후지산까지. 이런 풍경 앞에서 현지 편의점에서 산 간단한 주먹밥과 맥주 한 캔의 맛은 그 어떤 고급 요리보다 특별하다. 특히 5월의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 때, 바다 내음과 함께 맡는 공기의 청량함은 도시의 일상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02. 가나자와의 니시차야가이
도쿄와 교토 사이에 위치한 가나자와는 일본의 금박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겐로쿠엔 정원과 21세기 미술관에 몰리지만, 현지인들은 '니시차야가이(西茶屋街)'라 불리는 전통 찻집 거리를 더 사랑한다.
5월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
- 6월부터 시작되는 장마(츠유) 전 마지막 건조한 시기로, 금박 제작에 가장 좋은 날씨
- 관광 성수기를 피해 전통 가옥과 좁은 골목길을 여유롭게 산책 가능
- 5월 중순경 열리는 소규모 지역 축제에서 현지 생활과 전통문화 체험 가능
- 비수기로 게이샤 공연 예약이 수월하고 가격도 10-20% 저렴함
니시차야가이는 1820년경에 조성된 찻집 거리로, 더 유명한 히가시차야가이보다 관광객이 훨씬 적다. 격자무늬 창문이 특징인 전통 건축물이 늘어선 거리는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행 포인트
- 가나자와역에서 버스로 15분 거리, '하시바쵸(橋場町)' 정류장 하차
- 오후 3-5시 방문 시 석양에 물든 전통 가옥 풍경이 가장 아름다움
- 주말보다는 평일에 방문하면 현지인들의 일상을 더 가깝게 경험 가능
현지인 꿀팁
"니시차야가이에서 다다미방 놀이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가나자와시 니시차야 자료관'을 방문하세요.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홍각벽으로 둘러싸인 다실의 다다미방을 재현해 놓았고 무료로 견학할 수 있어요."
"니시차야가이의 진짜 맛은 '니시야 카페(西屋カ페)'에 있어요. 외관은 평범해 보이지만, 250년 된 전통 가옥을 개조한 이곳에서는 가나자와 전통 과자 '우메겐보(梅げんぼ)'와 함께 마시는 차가 일품이에요. 특히 5월에는 신차(신녹차)가 나와 향이 더욱 좋습니다."
"니시차야가이를 방문한다면 꼭 '니시데라(西寺)' 뒤편 골목길도 탐험해 보세요. 관광객들은 거의 가지 않는 이 골목에는 금박 장인들의 작은 공방이 있어요. 5월 둘째 주 수요일에는 '오슈쿠사마(お宿様)' 행사가 있어 일부 공방이 개방되고 금박 체험도 할 수 있죠."
감성 포인트
해 질 무렵 니시차야가이를 걷다 보면 종이 문을 통해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과 간간이 들리는 샤미센 소리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든다. 특히 5월의 선선한 저녁, 좁은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전통 음악의 선율은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지인들이 이야기하는 '맑은 5월의 공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선명함이 이곳의 매력을 더한다.
03. 다카야마의 미야가와 아침시장
일본 알프스의 중심에 자리한 다카야마는 '작은 교토'라 불리는 전통 도시다. 관광객들은 보통 산마치 스지(옛 거리)와 다카야마 진야(관아)를 방문하지만, 현지인들에게 다카야마의 아침은 미야가와 강변의 아침시장에서 시작된다.
5월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
- 관광 성수기(4월 초 벚꽃, 10월 가을단풍) 사이의 비수기로 한적하게 시장 구경 가능
- 5월은 봄철 산나물과 특산품이 가장 풍성한 시기로 현지 제철 식재료 맛볼 수 있음
- 선선한 아침 기온으로 쾌적하게 시장 구경 가능 (여름철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움)
- 봄철 산악 지방 특유의 맑은 공기와 함께하는 아침 산책의 상쾌함을 경험할 수 있음
미야가와 아침 시장은 일본의 3대 아침 시장 중 하나로, 거리의 중심부를 흐르는 미야가와 강변을 따라 약 350m에 걸쳐 60여 개의 점포가 늘어선다. 강가 쪽에는 채소와 과일, 절임 식품을 판매하는 노점이, 건너편에는 일본 전통 과자와 민예품 가게들이 자리한다.
여행 포인트
- JR 다카야마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 시장은 4월~11월엔 오전 7시부터, 12월~3월엔 오전 8시부터 운영
- 날씨가 안 좋으면 개장 시간이 늦어질 수 있어 관광안내소 확인 추천
- 일찍 가면 현지인들의 장보는 모습도 보고 신선한 식재료도 먼저 골라잡을 수 있음
현지인 꿀팁
"미야가와 시장의 진짜 맛은 오전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있어요. 관광객들은 보통 9시 이후에 오기 시작하니, 그전에 방문하면 현지인들의 일상 모습을 볼 수 있죠. 특히 '야마노이모(山の芋)' 가게에서는 아침 일찍 다카야마 특산 산마를 갈아서 만든 '토로로죠유(とろろ醤油)'를 시식할 수 있어요."
"시장에서 꼭 맛볼 것은 '히다 소보로(飛騨そぼろ)'예요. 다카야마 특유의 달콤한 간장 맛 소고기 덮밥인데, 시장 중간쯤에 있는 '모리카와(森川)' 가게가 가장 유명해요. 특히 5월에는 새로 수확한 산나물을 토핑으로 얹어주는데, 이건 현지인들만 아는 계절 메뉴죠."
"시장 구경 후에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산마치 스지 대신 '니시진마치(西陣町)'로 가보세요. 미야가와에서 서쪽으로 10분만 걸으면 나오는 이 지역은 다카야마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펼쳐지는 곳이에요. 특히 '시미즈 양조장(清水醸造)'에서는 5월 한정 '신술(新酒)'을 맛볼 수 있어요."
감성 포인트
새벽녘 미야가와 강가에 하나둘 들어서는 시장 풍경은 그 자체로 여행의 추억이 된다. 강물에 반사된 아침 햇살, 상인들이 건네는 정겨운 인사, 그리고 공기 중에 퍼지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 향기. 이른 아침,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장을 거닐며 맛보는 따뜻한 '호타루이카 어묵(螢烏賊おでん)'의 맛은 관광 식당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진짜 다카야마의 맛이다.
특히 5월 맑은 아침, 시장 끝에서 바라보는 히다 산맥의 설산과 신록의 대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다카야마 현지인들이 "5월의 다카야마는 하늘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달"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여행의 마무리
일본의 5월, 벚꽃은 이미 졌지만 여름 더위와 장마가 시작되기 전 가장 완벽한 여행 시기다. 가마쿠라의 고요한 사원과 해안길, 가나자와의 시간이 멈춘 듯한 찻집 거리, 그리고 다카야마의 활기찬 아침시장까지. 이 모든 곳에서 만나는 건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의 일상과 그들이 사랑하는 진짜 일본의 모습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다른 나라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5월의 일본은 그 '다른 시선'을 선물한다. 관광객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일본인들의 일상 속으로 슬며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여행. 그런 여행을 꿈꾼다면, 올해 5월엔 일본의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작은 팁 하나! 여행 전에 각 장소의 최신 정보(특히 운영 시간)는 한번 확인해 보세요. 현지 날씨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너무 계획에만 매이지 말고, 때로는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랍니다. 길을 잃다 발견한 장소가 종종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니까요.